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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몽당연필
작성자 graegrea
작성일 2018-12-10 [18:30] count :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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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몽당연필

 

몽당연필이라면 손에 쥐기도 어려울 정도로 작아진 연필을 말합니다. 깎고 또 깎아 쓴 것으로 닳고 닳은 모양이지요. 이제는 이러한 몽당연필을 일부러 찾아 구경하기조차도 힘들어졌지만 지난 60년대 너나없이 어렵고 가난해서 모든 물자가 부족했던 시절에는 이렇게 작아진 몽당연필을 사용하기 쉽도록 인위적으로 길이를 늘이곤 하였는데 주로 다 쓰고 폐기 된 모나미 볼펜 자루가 많이 사용되어졌습니다... 지금 아이들은 칼로 연필을 깎아 써 본적이 없다고들 말합니다. 그래.. 위험하기도 하고 또 다른 필기구들이 넘쳐나고 있으니까...

 

그러한 몽당연필들을 가지고 글씨도 쓰고 그림도 그렸는데 좀 더 진하게 써지도록 하기 위하여서 혓바닥에 꾹꾹 눌러 침을 발라가지고 쓰기도 했었지요. 쯧, 지금 생각하면 혀를 차게 되기는 합니다만 그마저도 세월이 오래 지나다 보니 돌아가 보고 싶은 추억의 장면이 되었습니다. 그래요.. 불현 듯 그러한 몽당연필들이 오그르르 들어있던 손때 묻은 양철필통이 떠오르며 보고 싶어집니다.

 

1979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테레사 수녀는 자신을 일컬어 “하나님의 몽당연필”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몽당연필로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시는 분이라고 하면서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위하여 평생을 헌신하였는바- 과연 하나님의 손에 들려진 작은 몽당연필로서 이 세상이라는 화판에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내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테레사는 거의 평생을 인도 캘커타를 중심하여 헌신 봉사하며 살았는데 날마다를 살아가는 것이 힘들고 버겁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들을 위로하고 또 영육 간에 힘이 되어주는 것으로 자신의 일생을 바쳤습니다. 특히 임종을 앞 둔 사람들이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도록-’ 힘썼는데 본인의 표현으로는 ‘인간답게 죽을 수 있도록-’이라고 하였습니다. 병들어 죽는 사람, 굶어서 죽는 사람, 늙어서 죽는 사람 들이 테레사 앞에 넘쳐 났고 그러한 이들의 비참한 모양을 신앙으로 상쇄하고 최소화하여 과연 ‘인간답게-’ 죽는 모양을 만들어 주려고 애썼습니다.

 

‘인간답게-’라는 말에 주목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간답게 살 권리’를 말하고 있고 그 권리의 쟁취를 위하여 힘쓰지만 테레사는 ‘인간답게 죽을 권리’에 눈을 돌렸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인간답게 죽는 것’이란 어떤 것일까... 당시에 그랬고 지금도 비슷하지만 인도에서는 가난한 사람이 죽으면 거적으로 둘둘 말아서 갠지스 강에 띄워 보내기도 하고 부자가 죽으면 온갖 호화로움을 다 갖춘 성대한 장례식을 하곤 하는데 과연 그러한 빈부 차의 모양으로 ‘인간답게-’가 구분되어지는 것은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인간답게-’란 ‘하나님의 형상을 갖추고 나온 존재답게-’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만드신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들 중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불어 넣어져 만들어진 존재는 오직 ‘사람’ 뿐임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동물이나 식물 등을 위하여 희생하신 것은 아니라 오직 ‘사람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지요. 쯧.. 그렇습니다. 오직 본능과 본성에 충실한 동물들과 식물들이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죄’라는 단어는 오직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것이지요.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죽고 또 죽어가고 있습니다. 병들어 죽는 이들이 여전하고 사고로 죽는 사람, 그리고 절망하여 자살하는 사람과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하는 사람... 등의 모양들이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질병으로, 늙음으로, 사고로.. 각각 다른 원인들을 가지고는 있지만 우리 모두가 ‘결국에는 다 죽는다’는 것에는 이의가 있을 수 없습니다.

 

회자되고 들려오는 이야기들 속에 이제는 100세 시대를 넘어 150세(!) 시대도 곧 도래할 것이라고들 합니다. 신약의 개발로 이든지 유전자 조작으로 이든지 또는 언뜻 언뜻 듣게 되는 꿈 같은 이야기들 즉- 과학의 힘으로 시간의 관통을 막아내는 도구가 발명이 되든지- 아무튼 누구나 오래 살기를 원하고 그래서 오래 살게 된다고 하는 것은- 일단은 좋은 일입니다. 그래서 무병장수(無病長壽)를 최고의 소망으로 알고 그렇게 되기를 구하고들 있지요.

 

그러나 또한 아무리 건강하고 행복한 무병장수라고 하여도 아직까지는 결국 죽게 되는 것을 넘어 설 수 없으며 그러기에 Well-dying 이라는 말도 나오게 된 것이지요. 곱게 죽자, 아름답게 죽자, 미련 없이 죽자, 발버둥치지 말고 죽자 라는 내심을 모두 함축하고 있는 신조어가 아닐 수 없고 많은 이들이 이에 공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피할 수 없기에-’ 그렇듯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무엇 때문에 발버둥치고 몸부림을 치는 등 추한 모습을 보일 필요가 어디에 있겠는가-!!

 

그래서 앞으로는 ‘편안한 죽음’이 Well-dying의 권면을 넘어 어떻게든 상품화 되는 세상도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너무 우울한 생각이 아니냐고 나무랄 사람들도 있겠지만 사실은 한 사람의 일생이 ‘아름다운 죽음’의 모양으로 마무리 된다고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또 꼭 필요한 일이 분명합니다... 그 모양을 바라보는 후세들에게도 불원간에 자신들의 일로 닥쳐 올 죽음에 대한 용기와 편안함을 준다는 점에서도 그러합니다.

 

어릴 적.. 엄마가 학교 앞 문방구점에서 사준 노랑색 ‘백두산 연필’ 두 자루를 아껴 쓰던 생각이 납니다. 어린 눈이라서 그랬겠지요. 굉장히 길었고 그래서 두고두고 한 참 쓸 것이라고 생각하였지만 연필심이 부러져서 깎고.. 뭉툭해져서 깎고.. 또 심심해서 깎기도 하였더니 어느 덧 몽당연필이 되곤 하였는데... 지금 턱을 괴고 먼 하늘을 바라보면.. 인생의 시간도 이와 같구나 하는 생각의 피어오름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고고의 소리를 지르며 태어났을 때의 모습이 한 자루의 ‘새 연필’이라고 한다면 몇 살 즈음을 ‘몽당연필’이라고 할 수 있을까.. 70대.. 80대..? 그렇다면 지금 예순 세 살인 나는 어떤 연필일까.. 테레사 수녀는 자신의 키가 작고 인물도 볼품이 없다는 뜻에서 스스로 ‘몽당연필’이라는 표현을 하였을 것이라고도 말들 합니다. 그럼 키가 크면 죽을 때까지 ‘장(長)연필’..? 허허.

 

어떻든 흘러가는 빠른 세월은 우리 모두를- 그 모양에서, 용도에서, 취급과 대접에서- 몽당연필 신세를 만들어 놓고야 말지요. 뒷전 노인네가 되기도 하고 골방 늙은이가 되기도 하는 모양들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세상을 아름답게 그려내는 몽당연필’들이 되어야 합니다. 테레사 수녀의 모양까지는 아니더라도 비록 아주 작고 희미하게 흔들리는 작은 촛불모양이라도 내 주변을 밝히고 웃게 하는 사람의 만년과 말년이라면 행복한 삶이며 성공한 삶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손에 쥐어져 있는 사람이 그렇게 됩니다.

 

산골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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